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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보편적 시청권’을 강화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법사위를 통과해 본회의 심의를 앞둔 이 법안은 ‘중대한 국민관심행사’라는 범주를 두고 전국 단위 지상파와 해당 방송사의 OTT를 통해 실시간 중계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올림픽과 월드컵 등이 대표적 논의대상이다.
법안의 취지는 경제적 형편 때문에 올림픽이나 FIFA 월드컵 같은 국민적 관심행사를 보지 못하는 국민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이다. 그러나 좋은 취지가 곧 좋은 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꼭 짚어야 할 중요한 질문이 부족했다.
그래픽=이철원
왜 스포츠인가? 왜 올림픽과 축구 월드컵인가? 야구 월드컵은 왜 아닌가? 영화나 공연이 아닌 스포츠에만 무료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면 그 특별한 공익은 무엇인가? 그리고 왜 지상파인가? 미디어 환경이 급변한 지금 ‘보편적 접근권’이라는 목적과 ‘지상파’라는 수단은 더 이상 같은 말이 아닐 수 있다.
FIFA나 IOC 같은 국제 권리자는 세계 시장에서 중계권을 판다. 한국 사정을 고려해 가격을 낮춰주지 않는다. 국내 사업자에게 무료접근과 재판매에 관한 의무를 강제하면 협상력을 떨어뜨릴 위험성은 없는가? 급변하는 미디어 플랫폼의 경쟁과 혁신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 비용은 결국 누가 부담하는가? 입법은 이런 질문에 답한 뒤 선택하는 마지막 단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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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자 해럴드 라스웰은 “정책은 사회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여러 가치 가운데 무엇을 우선하고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배분할지를 정하는 일”이라고 했다. 따라서 정책은 눈앞의 현상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문제 정의에서 출발해야 한다. 원인을 찾고 국가 개입의 당위성을 확보하며, 여러 대안의 비용과 편익, 경쟁 제한과 부작용까지 비교해야 한다.
현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반대 방향으로 힘을 가하는 것은 정책이 아니다. 가격이 올랐다고 누르고, 수요가 몰렸다고 막고, 유료화됐다고 무료화를 명령한다고 원인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더구나 정책의 대상으로 삼은 기업과 시장, 국민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기업은 투자와 가격을 바꾸고 소비자는 행동을 조정하며 시장은 새로운 길을 찾는다. 선의의 개입이 의도와 정반대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허버트 사이먼의 ‘제한된 합리성’은 정책결정자가 모든 정보와 결과를 알 수 없음을 경고한다. 그래서 정책에는 전제가 틀릴 수 있다는 겸허함과 예측가능성이 필요하다. 국가 개입의 원칙이 분명해야 국민과 시장도 장기적 판단을 할 수 있다. 여론이 움직일 때마다 대책을 내놓고 예상과 다른 반응이 나오면 보완책을 얹는 순간, 규칙은 복잡해지고 정책에 대한 신뢰는 떨어진다. 시장 실패를 고치려다 ‘정부 실패’를 만드는 것이다.
월드컵 이후 문화체육관광부 주도로 K-축구혁신위원회가 출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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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부의 개입가능 범위를 먼저 설계하기보다 인물을 앞세우고 위원회부터 만든 게 문제였다. 이후 FIFA와 AFC가 혁신위 활동에 관한 자료를 요구하며 제3자 개입에 관한 규정을 지적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목표와 구조, 역할과 책임의 한계부터 정했어야 했다. 결국 거창한 출범에 비해 권고의 범위는 제한적이었고, 박지성이라는 소중한 이름의 상징성만 소모한 모양새다. 사람보다 구조가 먼저고, 대책보다 철학이 먼저다.
7월 6일 서울 올림픽파크텔 베를린홀에서 'K-축구 혁신위원회' 출범식이 열렸다. 박지성 공동위원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스포츠조선
정치·행정 리더들은 현상에는 빠르게 반응하나, 스포츠가 오늘의 국민과 사회에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이해하고 고민하는지에 대한 우려가 크다. 월드컵 이후 청문회와 현안 질의에서 절차의 잘잘못을 따지는 호통과 질문은 많았다. 그러나 한국 스포츠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국가가 무엇을 지키고 키워야 하는지는 묻지 않았다.
보편적 시청권도 무료중계를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무엇을 보호하려는 것인지부터 합의해야 한다. 문화적 접근권인가, 국가대표 경기를 함께 보는 공동체적 경험인가, 경제적 약자의 시청권인가? 목표가 다르면 수단도 달라진다. 그리고 더 큰 질문이 있다. 2026년 대한민국에서 스포츠는 무엇인가?
과거에는 국가대표가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고 메달을 따 국위를 선양하는 것이 스포츠의 시대적 사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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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스포츠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훨씬 다양하다. 개인에게 스포츠는 건강과 행복, 교육과 여가다. 사회에는 공동체와 통합, 공정과 신뢰를 만드는 문화다. 시장에서는 콘텐츠와 IP이며 투자와 일자리, 부가가치를 만드는 산업이다. 미래세대에게는 기술과 세계시장을 연결하는 기회의 장이다.
시대정신이 바뀌면 국가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사회적 가치는 크지만 시장 공급이 충분치 못한 곳에는 공공자원을 집중하고, 시장이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내는 곳에는 공정한 규칙과 경쟁환경을 만드는 데 힘써야 한다. 정치·행정 리더들은 국민과 사회가 스포츠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스포츠가 어떤 방향으로 성장해야 하는지 고민한 뒤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눈앞의 논란과 여론에 반응하며 제도와 위원회부터 만드는 것은 올바른 순서가 아니다.
모든 국민에게 월드컵을 무료로 보여주는 것과 초등학생이 .심시간에 마음껏 축구를 할 수 있게 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본질적인 스포츠 기본권인가? 엘리트 선수의 성적과 국민의 건강, 국제대회 유치와 생활체육시설 보급, 프로구단 지원과 스포츠 기업의 글로벌 진출 중 공공자원은 어디로 먼저 가야 하는가? 모두 중요하다는 대답은 쉽다. 그러나 모두 중요하다는 말은 정책이 아니다.
2026년 대한민국 스포츠의 시대정신부터 확립해야 한다. 국민과 사회의 수요를 확인하고 미래를 전망하며 국가와 시장의 역할을 구분해야 한다. 그다음 정책을 만들고 입법은 후순위다. 법은 여론에 급히 반응하는 첫 번째 수단이 아니라, 충분한 토론과 숙고 끝에 내리는 최종 선택이어야 한다.
이해하고 고민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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